저자: 미스터 슈 | 출처: 차오양 인베스트먼트
1
워런 버핏의 “남들이 탐욕스러울 때 두려워하고, 남들이 두려워할 때 탐욕스러워라”는 말은 투자계의 금과옥조로 통한다. 시장이 폭락할 때마다 이 말이 위안이 되곤 하지만, 정작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시장이 탐욕에 휩싸일 때 함께 탐욕스러워지고, 공포에 질릴 때 함께 공포에 빠진다.
이렇게 ‘알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는 어렵다’는 모순 현상은, 아마도 진정으로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진리는 종종 한 문장이나 공식으로 압축되지만, 그 이면에는 생략된 깊은 과학적·철학적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 겉모습만 보고 속살을 모른다면, 그것은 진정한 앎이 아니다.
『지혜를 찾아서—다윈에서 멍거까지』에는 인간의 공포를 다룬 전문적인 장이 있다. 이를 읽으면 공포가 우리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감정 유산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정글에서 살던 선조들에게는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다. 맹수, 독사, 심지어 동족 간의 잔혹한 살육까지 언제든 목숨을 앗아갈 수 있었다. 이런 위협 앞에서 가장 빨리 도망친 자가 생존했다. 따라서 공포를 민감하게 감지하고 빠르게 반응하는 능력이 뛰어난 개체가 살아남았고, 이 감정은 세대를 이어 유전되었다. 이는 생리학적으로도 입증된다. 우리 뇌 깊숙이, 귀 높이의 측두엽 내측에는 좌우에 아몬드 모양의 신경세포 덩어리가 하나씩 있는데, 이를 ‘편도체’라 부른다. 편도체는 공포 기억 형성의 핵심 부위로, 위험을 회피하도록 돕는다. 그 반응 속도는 고작 12밀리초로, 눈 깜빡임 속도의 25분의 1에 불과하다. 마치 인체의 경보 시스템처럼 위험에 대한 공포감을 일으키지만, 지나치게 예민한 나머지 공포를 본능적으로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연구에 따르면, 단순히 타인의 고통을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당사자 못지않은 강도의 공포를 느낄 수 있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통찰력 있게 지적했다. “우리의 공포는 종종 위험 그 자체보다 훨씬 크다.”
공포는 과장될 뿐만 아니라 전염되기도 한다. 인간의 진화는 자연선택의 길을 걸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선택의 법칙도 따랐다. 공동체 생활이 생존에 필수적이었던 시대에는, 집단의 인정을 받지 못하거나 추방당하는 것이 맹수 앞에 서는 것만큼 치명적이었다. 이는 우리에게 ‘사회적 동조’ 심리를 남겼다. 즉, 가능한 한 타인과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려는 경향이다. 한 심리 실험에 따르면, 누군가 엘리베이터에서 문을 등지고 서 있으면, 뒤따라 들어온 사람들도 그 행동이 이상함을 알면서도 똑같이 따라 한다. 이런 진화적 유산은 집단 내에서의 안전을 보장해주었지만, 동시에 개인의 이성과 의지를 집단의 무의식에 종속시켰고, 구스타프 르봉이 말한 ‘군중 심리’로 이어지기도 했다.
2
편도체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진화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 진화사는 우리 각자 안에 장단점을 모두 부여했으며, 그 유산 중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리는 사람이 진정한 고수다. 변증법은 이런 고수들이 공유하는 무기다. 그들은 모두 ‘물극필반(物極必反)’과 ‘월영이규(月盈而虧)’의 이치를 잘 안다.
‘물극필반’은 『주역』에서 나온 말로, 단 네 글자에 우주의 심오한 법칙이 담겨 있다. 세상의 많은 이원적 개념들은 서로 의존하고, 포함하며, 전환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태극도의 음양이 그러하듯, ‘끊임없는 순환’을 이룬다. 해와 달도 이 법칙을 따른다. ‘일중즉체(日中則昃), 월영즉식(月盈則食)’—해는 정오가 지나면 기울고, 달은 가득 차면 이지러진다. 그러나 반대로, 달이 이지러져도 다시 차오르는 날이 온다. 달은 결코 가득 차거나 이지러진 상태에 머물지 않고, 그 사이를 끊임없이 오간다.
자연과 기상도 마찬가지다. 노자는 “표풍불종조(飄風不終朝), 주우불종일(驟雨不終日)”이라 했다. 거센 바람은 아침 내내 불지 않으며, 소나기는 하루 종일 내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에머슨은 “끝은 시작이며, 어둠 뒤에는 반드시 새벽이 오고, 바다 아래에는 또 다른 심연이 있다”고 말했다.
주식시장도 이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워드 맥스는 투자를 ‘진자’에 비유했다. 진자는 한쪽 끝으로 영원히 치우치거나 그 끝에 머물지 않는다. “확실히 예측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극단적인 시장 행동은 반드시 반전된다는 점이다… 모든 것은 상호 연결되어 있다. 어떤 사건도 고립적이거나 우연이 아니다. 그것들은 일정한 순환 패턴의 일부이며, 이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조지 소로스는 “모든 것에는 성장의 정점이 있고, 그 후에는 쇠퇴의 정점이 온다. 최고의 상황 다음에는 반드시 최악의 상황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존 템플턴은 “시장의 상승은 절망 속에서 태어나, 회의 속에서 자라며, 낙관 속에서 성숙하고, 열광 속에서 무너진다”고 지적했다.
변증법은 이미 행동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중국 고대의 재신(財神)이자 인생의 승리자 범려는 “가뭄이 들면 배를 만들고, 홍수가 나면 수레를 준비하라”고 했다. 반대의 상황을 대비하라는 가르침이다.
하워드 맥스는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진자에 대한 인식’이라고 강조했다.
찰리 멍거는 “반대로 생각하라, 항상 반대로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워런 버핏은 “남들이 탐욕스러울 때 두려워하고, 남들이 두려워할 때 탐욕스러워라”고 했다.
사실 변증법의 배경에는 과학이 자리 잡고 있다. 공포라는 키워드로 돌아가보자. 진화 메커니즘은 인간에게 공포라는 감정을 부여했지만, 인간의 생리적 조건에는 한계가 있다. 편도체의 반응이 아무리 빠르고, 공포의 힘이 아무리 강해도, 인간의 신체와 신경계는 그 한계를 지닌다. 공포가 극에 달해 그 힘이 소진되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이 기회가 찾아오는 때다.
주식시장은 인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개인은 시장의 일부다. 당신의 공포와 탐욕이 모여 시장의 등락을 만든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주식시장은 ‘저울’처럼 경제 성장과 그 질을 반영하지만, 단기적으로는 ‘투표함’처럼 사람들의 기대와 심리를 반영한다. 시장의 기대가 이미 공포에 잠식당했는데 기업의 기본적 실적이 실제로 악화되지 않았다면, 기회의 새벽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많다. 현재의 코로나19 팬데믹과 가장 유사한 것은 2003년 사스(SARS) 사태였다. 자본시장이 사스 바이러스가 통제되고 있다는 신호를 포착하자, 당시 처참했던 홍콩 항셍지수는 2003년 4월 저점 8,331포인트에서 2004년 3월 고점 14,058포인트까지 약 50% 급반등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미국 S&P 500 지수는 폭락했다. 위기는 소련이 쿠바의 미사일과 항공기를 철수시키며 11월에 해소됐다. 그러나 S&P 500 지수는 전쟁 공포가 최고조에 달했던 10월부터 이미 반등하기 시작해, 1962년 10월 23일 53포인트에서 1966년 초 94포인트까지 77% 상승했다.
공포 또한 변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3
명절 동안 집에 머물며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다시 읽었다. 이 책은 병균이 어떻게 인류사의 흐름을 뒤바꿨는지를 보여준다.
1519년, 에르난 코르테스는 고작 600명의 병사로 수백만 인구의 강력한 아즈텍 제국을 정복하려 했다. 스페인인들에게 결정적 우위를 안겨준 것은 천연두였다. 1520년, 천연두는 쿠바 출신의 한 스페인 노예를 통해 멕시코에 유입되었다. 이후 번진 대유행으로 아즈텍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죽었고, 쿠이틀라우악 황제도 목숨을 잃었다.
사실 신대륙 전체 원주민 인구의 급감도 주로 병균 때문이었다. 콜럼버스의 도착 후 1~2세기 동안 인디언 인구는 95%나 줄었는데, 그 원인은 천연두, 홍역, 인플루엔자, 발진티푸스, 백일해, 말라리아, 유행성이하선염, 결핵, 황열병 등이었다.
유럽 중세의 흑사병을 떠올리면 더욱 소름이 끼친다. 1347년부터 1353년까지 유럽을 휩쓴 페스트 대유행은 2,5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는데, 이는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다. 참고로 인류의 대재앙인 제2차 세계대전의 인구 감소율은 고작 5%에 불과했다.
인류사는 병균과의 전쟁사이기도 하다. 유목 생활에서 농경 생활로, 다시 도시화와 세계화로의 전환은 대규모 집단 생활을 가능하게 했고, 이는 상품과 사람의 이동을 용이하게 했다. 하지만 동시에 병균이 치명적으로 확산될 수 있는 ‘날개’를 제공하기도 했다.
역사를 읽다 보면, 개인의 삶은 물론 인류 전체의 역사조차 불확실성 속에서 보다 확실한 생존 공간을 찾고 개척해나가는 일종의 ‘투자’처럼 느껴진다.
현재 인류는 대규모 사망을 일으키는 대부분의 치명적 병균을 퇴치했다. 이는 인류가 역경을 극복할 용기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러한 용기는 지금 우한의 코로나19(COVID-19)와 싸우는 전선에서, 각 의사와 간호사, 모든 자원봉사자들의 행동에서, 그리고 각 산업 현장에서 생산을 지속하는 모든 이들의 노력에서 빛나고 있다.
따라서 ‘알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는 어렵다’는 함정에서 벗어나려면, 진정한 앎을 얻는 것과 함께 행동할 용기가 필요하다. 위기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공포라는 본능을 경계하면서도 과학적이고 위생적인 생활을 실천해야 한다. 하지만 스스로를 혼란과 공황에 빠뜨릴 필요는 없다.
투자로 돌아가보자. 공포에 굴복해 용기를 잃는다면, 우리는 최고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피터 린치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70년간 발생한 40번의 시장 폭락 중, 내가 39번을 예측해 모두 팔아버렸다 해도, 나는 여전히 후회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중 가장 큰 폭락조차 결국 회복되었고, 더 높은 고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